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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2012-01-29(2) 록스에서의 짧은 산책, 정신없는 저녁식사

 

 

서큘러키에서 음료수로 목을 축인 후, 하버브리지 근처 오페라하우스가 마주 보이는 곳으로 걸어와 잠시 쉬었다.

땀을 식혀가며 앉아있으니, 우리 신혼여행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2010년 11월 16일 시드니에서 보낸 첫 날 찍은 사진들, 시드니는 봄이었기 때문에 시내 곳곳에 보랏빛 자카란다가 만개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 꽃이 초록 잔디, 파란 하늘과 어찌나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어울렸는지, 나는 이 도시에 첫눈에 반했더랬다.

꽃잎이 눈처럼 내려앉아 풀밭 위에 보라색 스카프라도 깔아놓은 듯 했다.

 

다시 찾은 서큘러키, 자카란다는 흔적도 없었다. 여름이니까~

그렇지만 거리 악사들의 음악, 애보리진이 연주하는 디저리두 소리가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흥분된 분위기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밝고 산뜻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사실 많이 피곤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시간이 아까우니까 그만 쉬고 발걸음을 옮겨 The Rocks를 구경하기로 했다.

 

 

 

Rocks는 서큘러키에서 시드니 코브를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위치한 곳인데, 이름처럼 바위투성이의 땅이었다고.

호주 원주민들이 오랫동안 살았던 곳이고, 유럽에서 온 최초의 정착민들이 지냈던 곳이라 오래된 건물과 역사적 장소가 많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육중한 갈색 벽돌건물들이 많았는데,

 

 

 

건물 1층으로 들어가 2층이나 3층에 난 문으로 나가면 정문앞에 난 길보다 한두층 높은 높이에 닦여진 뒷쪽 도로로 바로 나오게 된다.

원래 경사진 절벽이었던 곳이라 도로가 계단처럼 층을 달리하고 있는 듯.

앞 도로에서는 크고 육중해 보였던 건물들이 뒷 도로에서는 자고 아담하게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엔 다시 키큰 건물들이 즐비하고.

 

 

우리가 도착한 날이 마침 주일이라, 주말에 열리는 Rocks Market이 한창이었다.

이것저것 파는 물건들이 많았지만, 쇼핑을 하기엔 좀 지쳐있기도 했고, 노점이라고 별로 쌀 것 같지도 않아 그냥 눈으로만 즐겼다.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건물들. 예전엔 갈색 건물을 싫어했는데, 요즘은 고풍스러우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들어 좋다.

 

 

건물이 좌우로 길고 육중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서 건물을 통과할 수 있는 길을 낸 곳이 많은 듯 하다.

그런데 이런 곳이 또 아늑하고 예뻐 보이더라는.

정말 예뻐서 예뻐 보이는걸까, 아니면 무엇을 보아도 예쁘게 보일만큼 내 마음이 즐거웠던 걸까.

 

 

노점들이 한군데에만 몰려있지는 않고, 록스 여러곳에 흩어져 열린 듯 했다.

옷들이 참으로 알록달록하오. 나는 못 입겠다. ㅎ

저기 보이는 바위 및 터널은 죄수들이 맨손으로 뚫은 "아가일 컷"인듯.

 

걷다 보니 Argyle Street에 도달하게 되었다.

록스 지역의 중심가였다고 한다. 지금도 수공예품 샵 등이 있어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기도하고. 

단단한 사암 암반과 죄수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만들어진 건물과 거리들 때문인지, 거리 전체가 문화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고.

그런데 이곳에 페라리와 BMW 여러대가 즐비해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시 탑기어코리아에 꽂혀있던 우리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며.

 

 

 

신랑, 신부, 같은 옷을 맞춰 입은 들러리들.

아항~~결혼식이 있었던 거군요. 신부가 아름답더이다.

그런데 이 많은 차가 다 어디 필요한거지? 모두 이 결혼식 차량인 듯 하던데.

아무튼, 축하포유~~

 

 

 

맘에 드는 색상, 맘에 드는 가로등.

취향이라는게 수십번 바뀐다는 것을 요즘 경험하는 중.

그런데 나름 일관된 경향이 있다면, 럭셔리 하 것이나 모던한 것들 보다는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느낌들을 더 좋아하게 되고 있다는 거.

저런 인디언핑크? 팥죽색? 예전엔 딱 싫어했는데.

 

차분해 보이는 초록색 창문틀도 마음에 든다.

 

오후 5시 넘어까지 걷다보니, 약간 지치기 시작한다. 원래는 숙소까지 쭈우욱 걸어갈 생각이었으나,

 

포기하고 433번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1인당 2.1$)

 

원래 이 555번 프리셔틀을 타면 시내 왠만한 곳을 다닐 수 있는데, 그 때는 피곤함에 눈이 멀어서인지 셔틀 탈 생각을 못했다.

 

숙소에서 잠시 쉰 후, 남편의 연구실 동료 부부를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가게 된 곳은~

 

goulburn st. 와 george st.가 교차하는 곳에 위치한, scruffy murphy's 라는 Irish Pub

호주의 살인적인 물가를 고려한다면 정말 싼 값인 10불 정도에 스테이크(또는 피시앤칩스 같은 다른 메뉴)와 음료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라, 매우 인기가 많다고 한다. 좋은 곳을 소개해주신 동료분께 감사.

 

다소 시끌시끌하고 정신없는 분위기이긴 했지만, 다 먹고 남긴 그릇 상태를 보니 맛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스테이크를 별로 안 좋아해서 피시앤칩스를 먹었는데, 감자튀김이 너무 많이 나오고 생선은 조금이었다는...

 

 

배고픔을 해결하고 나오니, 비로소 사람들로 붐비고 자동차는 차단된 거리가 보인다.

알고 보니, 이 날이 Chinese New Year 퍼레이드 마지막 날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버스들도 이 구역을 피해 노선을 조정한 것이었고..

이게 원래부터 유명한 퍼레이드인지, 관광객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많이 나와서 구경하는 것 같았다.

 

 

아직 퍼레이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잠자리 코스프레 한 언니가 장대 위에 올라가 사뿐 사뿐 걷고 있었다.

간혹 기 다리로 휙휙 발차기도 해 주었지만, 찍진 못했고.

 

 

퍼레이드를 구경할까 하다가 언제 시작할지도 모르겠고 좀 귀찮아서,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뻥 뚫린 도로가 시원하고 좋긴 하더라.

 

8시 30분 경 숙소로 돌아와 초저녁잠에 빠졌다가, 밤 11시에 겨우 깨서 샤워를 했다.

11시 40분에 다시 잠을 청해 보았지만, 담날 새벽 2시까지 불면의 밤을 보냈다.

 

무리한 여정으로 컨디션이 약간 망가지긴 했지만, 금세 회복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행복한 여행 중이니까.